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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누가 선교사,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 오늘도 떠난다

 

이 시대 작은예수가 바로 여기 있다. 시한부선고를 받고도 사명을 멈추지 않고 있다. 바람 앞에 촛불 같은 목숨이라도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한다.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고 목숨 걸고 산 넘고, 강을 건너고 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끔찍한 고통을 참아내면서 말이다. 이 기적 같은 사연의 주인공은 필리핀에서 의료선교를 하고 있는 박누가 선교사다. KBS 인간극장에 출연해 얼굴이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이야기를 한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동을 받는다. 예수를 믿건안 믿건 간에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냐고 혀를 내두른다. 그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사랑하기 때문에.

 

 

/ 조혜민 기자 hm030@onnuri.org

 

박누가 선교사는 위암 말기 환자다. 그 끔찍한 항암치료를 받느라 체력이 완전히 소진된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와중에도 청진기를내려놓지 못한다. 아니 내려놓지 않는다. 아무리 견디기 힘든 항암치료도 의료선교를 할 수없는 것보다 고통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도움 받은 것 없는 이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그의 행동을 도대체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시간에도그의 발걸음은 필리핀 오지를 향하고 있다. 배에 복수가 차고, 목숨이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중환자지만 그의 발걸음은 쉬지 않는다.

 

박누가 선교사의 헌신적인 사랑 덕분일까.필리핀 마닐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 누가선교병원’ 을 떠올린다. 누가선교병원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아픈 사람들이 언제든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문을 닫지않는다. 일종의 응급실이다. 마닐라뿐만 아니라 오지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몸이 아프면 박누가 선교사를 떠올린다. 그가 한 순간도 의료선교를 쉬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박누가 선교사는 8년 전부터 필리핀 마닐라에서 누가선교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누가선교병원은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빈민들에게는 진료비를 받지 않는다. 박누가 선교사는 움직이는 병원도 운영하고 있다. 직접 버스를 몰고 필리핀의 오지를 찾아다니며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오지 의료봉사만 해도 대단한데 알다시피 그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중환자다. 살아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할 정도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 1992년도에 췌장암이 발병했고, 2004년에는 위암 4기로 시한부 선고를받았었다. 기적처럼 말기암을 이겨냈는데 지난해 이맘때쯤 재발했다. 1년 정도 살 수 있을거라는 시한부 선고를 또 받았다. 이미 암이 간과 임파선까지 전이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손과 발의 감각도 잃어가고 있다.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말초신경이 망가진 것이다. 현재 그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4개월 남짓이다.

 

 

인간 박누가와 선교사 박누가

 

 

 

박씨 집안에서 의사가 나왔다고 난리가 났었다. 집안의 자랑이자 희망이었다. 어려서부터공부를 잘했던 그는 경북 성주 출신이다. 4남4녀의 일곱째로 태어났다. 어려운 형편에도 의대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은 누나들의 헌신적인 지원 덕분이다. ‘ 개천에서 용 난’ 그를 누나들이 자기 일처럼 도왔다. 누나들의 헌신적인사랑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더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게 어엿한 외과의사가 됐다. 의사가된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꿈이 자라고 있었다. 의술을 좋은 일에 쓰기로 마음먹은 것.

 

 

 

재직하던 병원 사람들과 10년 넘게 의료 선교를 다녔다. 필리핀으로 의료선교를 갔다가그의 운명이 완전히 달라졌다. 분명 치료할 수있는 병인데도 의술이 부족하거나 돈이 없다는 이유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허무하게 목숨이 사그라지는 사람들을 봤다.그 광경을 보고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었다.1989년, 신혼집을 팔았다. 태어난 지 6개월된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무작정 필리핀에 왔다. 화장실도 없는 버스에서 생활하면서 의료선교를 시작했다. 얼마나 힘들고 고됐는지 모른다. 췌장암까지 걸렸다. 어머니, 큰누나, 큰형이 암과 간경화로 일찍 세상을 떠났는데 그마저 암에 걸렸다. 참혹한 소식을 전해들은 누나들이 망연자실 했다. 동생을 살려야 한다며 울부짖기를 수차례나 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남편의 고집을 아무도 꺾지 못했다.박누가 선교사는 “자신만을 바라보는 이들을두고 갈 수 없다”며 혼자 필리핀에 남았다.

 

 

단 한 사람도 포기할 수 없다

 

 

 

누가선교병원은 후원으로 운영된다. 교민들이 내는 약간의 치료비도 보탬이 된다. 박누가선교사는 병원에서 먹고 잔다. 그를 위한 공간이라곤 작은 방 하나가 전부다.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빠지고, 몸이 계속 야위고있다. 7개월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한국과 필리핀을 오가며 항암치료 받고, 의료선교를 이어가기를 반복하고 있다. 차에 타는 것조차 버거운 몸으로 비행기를 타고 있다. 이미 암세포가위와 간, 임파선까지 전이된 상태다. 수술로도없애지 못한 암세포가 빠르게 전이 되고 있다.희망으로 시작한 항암치료도 그의 병세를 완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상황에도 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고백한다.

 

 

 

한번은 오지의 학교로 의료선교를 갔다. 200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한 줄로 서서 진료를 받았다. 진료를 하다 너무 고됐던지 잠시 쉬겠다고 했다. 환자들 앞에서 괜찮은 척 참고 있었지만 괜찮지 않았다. 너무 고통스러운 상태였다.간신히 차에 들어가 쉬면서 이렇게 기도했다.“남은 아이들을 진료할 수 있는 새 힘을 주십시오.”

 

 

 

인간의 언어로는 무엇이라고 도저히 설명할수 없는 그의 헌신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이제 그만 내려놓고 쉴 법도 한데 더 깊은 산속오지마을로 가는 그를 누가 말릴 수 있을까. 그의 머릿속에는 원주민들을 치료하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그곳은 전염병과 가난으로 유아사망률이 높은 매우 위험한 지역이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도 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청진기와 약만 있으면 된다. 그는발걸음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지 사명을다하고 있다. 진료를 마치고나서는 재회를 소망하며 환자들과 사진을 찍는다.

 

 

“사역 갔다 온 사진을 보면서 그 아이들이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많이 아픈 아이들을 다시 찾아갈 때도 그 사진을 유용하게 쓸수도 있고요.”

 

 

한 달에 한 번씩 5년 동안 찾아간 환자도 있다. 한국에서는 약물치료만으로도 쉽게 고칠수 있는 고혈압 환자였는데 그 환자는 약을 구하지 못해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 환자가 걱정돼서 고소공포증이 있는 그가 아찔한높이의 다리를 매번 건너고 있다. 이번에 찾아갔을 때에는 어쩌면 다시 오지 못할 것 같다며3개월 치 약을 줬다. 그리고 당부했다.“내가 오지 않으면 약을 꼭 사먹으세요.”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그는 왜 의료선교를고집하는 걸까.

 

 

“아직 복음을 접하지 못한 영혼들이 많거든요. 나는 단 한 사람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 박누가 선교사의 가슴시린 사랑이야기는CGNTV 개국 12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사랑하기 때문에’에서 만날 수 있다. 4월 2일 오전10시 30분, 4월 4일 오후 3시 30분(재방송)에방송된다. 내레이션은 배우 김석훈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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